좋은 글이라서 가져와봅니다.
모두업보 때문일까?근거 없는 업장소멸과 액땜
글을 쓰면서 난감할 때가 있다.그것은 질문을 받았을 때이다.교리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때로 삶의 방식과 같은 고차원적인 물음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이럴 때 스님도 아닌 것이 학자도 아닌 것이 답하기가 참으로 난처하다.그저 인터넷에 글쓰기 하는 보통불자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좀 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삶을 바라보는 방법(프레임)
블로그를 관심있게 지켜 보고 있는 어느 법우님께서 댓글을 보내 주셨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사항이
있어 여쭙고자 합니다.
삶을 바라보는 방법(프레임)입니다.
1. 전생으로부터 업과 과보가 있고
2. 금생에 보시 및 계, 정, 혜를 닦겠다는 의지가 있고
3. 금생에 연기에 따라 펼쳐지는 사건, 사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1~3번과 무아를 결합하여 삶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d법우님)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경전을 근거로 하는 글쓰기임에도 불구하고 인생상담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으로 생각해서 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하였듯이 스님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 더구나 스승도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스승도 없는 것이 알음알이만 잔뜩 늘어 사량분별하는 글쓰기만 한다”고 비판한다.
질문에 대하여 답장을 드릴 수 없는 처지라고 하였다. 생활인이다 보니 생업에 바빠서 일일이 답장을 해 줄 수 없는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다만 질문의 내용을 기억하여 가슴에 품고 있겠다고 하였다. 마치 닭이 알을 품듯이 풀려지지 않는 화두처럼 마음에 담아 놓으면 어느 때 좋은 생각이 떠 오를질 모르기 때문이다.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글을 주신 법우님은1번 사항에 대하여“무아이지만 전생으로부터 업을 상속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하면서,경전에 실려 있는‘자신은 업의 주인,업의 상속자’라는 구절을 이야기 하였다.일반적으로 불자들이 알고 있는 업설이기 때문이다.
업은 자신의 주인이라는 ‘업자성정견’에 대한 글을 여러 차례 쓴 바 있다. 그리고 업보는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만든 것도 아니라 경전의 근거를 들어 “접촉을 연유로 생겨나는 것이다.(S12:24)”라고 글을 올린 바 있다. 이렇게 업과 업의 과보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그런데 법우님이 올린 문제제기에 대한 글을 지나칠 수 없어서 숙고하기 시작 하였다. 그러나 삶의 과정에서 풀리지 않은 의문이 업과 과보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사량분별로는 알 수 없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전을 떠들어 보는 것이다.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하고 열어 보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안에원하는 답이 들어 있다! 여러 차례 겪은 일이다.
불자들이 알고 있는 업설
부처님이 설한 팔만사천가지 법문 안에 뭇삶들이 고민하는 모든 사항이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런 것 중의 하나가 업과 업의 과보에 대한 것이다.그런데 빠알리 니까야를 열어 보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것은 이제까지 불자들이 알고 있는 업설을 뒤집어 엎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상윳따니까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씨바까]
“존자 고따마여,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들은‘개인이 느끼는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모든 것은 과거의 원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말하고 이와 같이 여깁니다.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께서는 이것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Moiyasvakasutta-몰리야 씨바까의 경,상윳따니까야S36:21,전재성님역)
경에 등장하는 몰리야 씨바까는 인도의 왕족이었다.부처님을 만나서 운명에 대하여 물은 것이다.그런 씨빠까에게 부처님은“고통이라는 것은 많은 원인들에 의해서 온다.”라는 시실을 가르쳐 준다.그런 내용이 경에 실려 있다.
경에서 씨바까가 질문한 내용으로“개인이 느끼는모든 것은 과거의 원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이와 같은 견해를 일반적으로‘숙명론(pubbakatahetu)’으로서자이나교의 이론이라 한다.
지금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일반적으로 사람들은업보로 알고 있다. ‘업설의 신봉자(kammavada)들’이다.모든 행위,즉 업은 좋건 나쁘건 그것에 합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현세에 영향을 끼치거나 내세에 그 영향을 끼친다고 하며 우리의 현세의 존재는 과거의 행위의 결과라고 본다.그러나 부처님은 이런 업설을 부정한다.참으로 놀라운 일이다.이제까지 불자들이 알고 있는 상식을 뒤집어 엎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 가지 업설이 있는데
그렇다면업설은 어떤 것이 있을까?이교도경(S12:14)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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