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처스(Snatchers, 2019)

감독:Stephen Cedars, Benji Kleiman

각본:Stephen Cedars, Benji Kleiman, Scott Yacyshyn

출연:Mary Nepi, Gabrielle Elyse, J.J. Nolan

동명의 TV 시리즈(2017-2018)를 영화화

 호러 마니아들에게 각별한 대접을 받는 장르가 있지요. 이상하게도 이 장르는 호러의 본질과는 오히려 거리가 멉니다. 널브러진  팔다리와  낭자한 유혈과 과도한 폭력이 스크린을 뒤덮지만 무섭기는커녕 때로는 실소를 때로는 폭소를 자아내지요. 기대치  않게도 80년대 스플래터 호러의  계보를 잇는 듯한 젊은 영화를 발견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제목을 보고 바로 알아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맞아요. 신체강탈 외계생물체의 이야기입니다. 졸작과 수작이 '난무'했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여러 영화를 통해 반복해서 다루어진 소재지요. 굵직한 선배 작품 몇만 잠시 짚어 보자면, 돈 시겔의 55년작과 필립 카우프만의 78년작은 냉전시대 자유진영의 개인이 갖는 잠재적 공포나 소외감을 다루었고, 아벨 페라라의 93년작은  미국 보수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았는데, 모두 묵직한 주제를 지닌 진중한 태도의 영화들이었습니다. 하지만 2019년에 낡은 이야깃거리를 또다시 들고 나온 이 영화는 지극히 가볍고 발랄한 오락물로서의 길을 택합니다.

 일단 노골적인 코미디입니다. 어떤 스타일이냐면 현대적인 시트콤에 가까운 유머를 써요. 템포는 빠르고, 유행에 민감하면서 캐릭터와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둡니다. 그런데 이런 현대적인 느낌과는 정반대로,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가 싶은 케케묵은 것들을 또 끌어와 써먹습니다. 당장 특수효과만 보더라도 의도적임이 분명해 보일 정도의 구닥다리 방식을 갖다 쓰지요. 이 부분은 상세히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테니 일부러 옛날 맛을 냈는데 먹어 보니 그립던 바로 그 맛이더라라는 정도로 설명하고 말아야겠네요.

 플롯도 옛날 방식입니다. 논리나 인과관계 대신 오락물로서의 요구에 따라 느슨하게 짜인 플롯이지요. 의도가 뻔히 보이지만 이 장르에선 좋은 시퀀스만 뽑아낸다면  논리쯤은 다른 은하계로 날려 보내도 아무 상관 없지요. 그런데 이 영화의 주요 시퀀스들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그리고 자신감이 넘쳐요. 구조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허술함이 존재하는데, 이걸 억지로 감추려 했다면 흥이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약간의 흠결은 놓아 두고 보여줄 수 있는 걸 최대한 보여주는 뻔뻔스러움을 지녔습니다. 좀 섣부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는 예전에 이 장르를 통해 데뷔한 재기발랄했던 감독 몇몇이 있었고, 이후 모두가 아는 거장으로 성장했으며, 해당 작품은 아직까지도 장르 대표작으로 일컬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지요. 그들의 대표작들도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능청스러우면서도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한 이 깜찍한 복고풍 하이틴 호러도 어쩌면 훗날 뭔가 저지를 게 분명한 신예 감독과의 첫 대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추측이기보다는 바람입니다. 무엇보다 이 장르는 이제는 너무 희귀해요. 아주 가끔씩만이라도 이 영화처럼 예전 그 맛을 제대로 내는 작품이 나와 줬으면 합니다.